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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법회명 : 약사재일법회 |
법 사 : 정우스님 |
법회일자 : 2005-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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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재일을 맞이하여 법회를 갖게 되었다. 법당에 모신 일 만 부처님을 보면 결인이 각각 다른 일곱 부처님이 계신다. 법당의 중앙에는 주불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셨고 양 옆으로 로사나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셨다. 또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을 모시고 있으며, 53여래부처님이 계신다. 원불 가운데에는 앞서의 세 부처님 외에 동방약사여래부처님, 서방아미타부처님, 남방보승여래부처님, 북방부동존여래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약사여래부처님은 동방을 상징하고 있는데,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연현상이야 그러하나 동방을 향하고 있는 그 마음에는 깊은 뜻이 있다. 사람이 햇빛을 받지 않고 살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본인도 오랫동안 건물 내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자주 감기를 앓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자주 햇빛을 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듯 동방이란 이른 아침 해가 솟는 곳이고, 일찍 일어나 맑고 깨끗한 정신과 육신으로 태양에너지를 받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에너지가 마치 병을 고치는 불보살님과 같다라는 표현을 의미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요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이라는 말이 있다. 삼일간만 열심히 도를 닦아도 천년을 덮을 복력과 공덕이 담기지만 백년동안을 탐해보아야 아침햇살에 비친 먼지요 이슬과 같다는 뜻이다. 또 열반경에서는 “배고픈 사람이 잠깐 잠깐 밥을 먹어도 배가 부르듯이, 아픈 사람이 잠깐 잠깐 약을 먹어도 병이 낫듯이, 금은장이가 견습공이었을 때에는 잘 못하였지만 잠깐 잠깐 만들다 보면 어느날 숙련공이 되듯이 중생의 도 닦음도 이와 같느니라.” 하셨다. 우리들이 24시간 부처님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본인이 아는 스님 가운데 한 분은 늘 화두를 들어 놓지 않는데, 잠이 들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화두를 놓치게 된다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듯 보리심을 잃지않고 찰라 지간이라도 그와 같은 것이 중첩되어 채워간다면 그것을 우리는 수행이라 하고, 정진이라 하며, 해탈이라 하며, 참 자유라 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청법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 중 대부분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남들이 겪어가는 과정을 봐도 그러함을 알게 된다.
어떤 것을 편안함이라 하고, 따뜻함이라 하고, 넉넉함이라 하고, 고요함이라 하고, 풍요로움이라 하고, 포근함이라 할 것인가? 불교의 초심자가 본인에게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가장 인간적인 분이다.”고 대답할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 인류사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모습을 지녔던 분인데, 가장 인간적인 분이다. 가장 인간적이라는 것은 위에서 말했던 편안함과 따뜻함 넉넉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깨어진 그릇은 사용하지 않았다. 불가에서도 깨어진 소리를 내는 사물은 사용하지 않았었다. 깨진 소리나 찢어진 소리를 접하다 보면, 물이 모양에 따라 모양이 변하듯, 사람이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편안치 못한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따뜻하고, 넉넉하고, 훈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사절기 가운데에서 보면 추분과 춘분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하지에는 낮의 길이가 길고 밤의 길이가 짧으며, 동지에서는 그 반대이다. 이것이 공전의 법칙이다. 아무리 우리가 서두르고 조급히 서두른다 한다 해도 지구가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제아무리 빠른 비행기도 지구의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르지 못하다. 그것보다 빠른 것은 단 하나 우리의 마음 뿐이다. 마음일 뿐이다. 선정삼매를 통해서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살 때만이 훈훈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다.
“불자들아 고요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마음이 고요하고, 둘은 몸이 고요함이니라. 몸이 고요함은 몸으로 하는 세가지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이 고요함은 뜻으로 하는 세가지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 하느니라.”
우리가 몸으로 짓는 업이 세가지가 있고, 입으로 짓는 업이 네 가지가 있고, 생각으로 짓는 업이 세가지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몸이 고요하다고 하는 것은 몸으로 짓는 업 즉, 살생을 하지 않으며,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사음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짓지 않는 것이다. 욕심이 적으면 어리석지 않고, 욕심이 많으면 많은 만큼 어리석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욕심이라 할 수 없다. 분에 넘치게 바라는 것이 욕심이다. 분에 넘치게 이익을 바라면 의로움을 잃게 된다. 고요한 마음과 고요한 몸을 이루게 되면, 여기에서 드러나는 따뜻함, 편안함, 포근함이 바로 부처님께서 갖고 계신 불가사의한 힘과 다름이 없다. 몸이 고요한 이는 사부대중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사부대중이 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할 것이다. 마음도 고요하고 몸도 고요한 이라야 같이 어울려 살 수 있으며, 번다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그 사람이 바로 조급하게 서두르면서 보체는 인생을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 할 것인가? 그것은 수행정진, 기도정진을 하여야 한다. 일반인들이 24시간 수행정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잠깐 잠깐 밥을 먹어도 배가 부르듯이 하루 한시간씩 이라도, 10분씩 이라도 지극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합하는 정진을 하여야 한다. 정진이란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업이 늘 깨끗하기 위하여 온갖 선하지 못한 업은 멀리 여의어야 한다. 불교에 입문하는 이에게 처음 가르치는 계심초학입문(誡初心學入文)에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야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하야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하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도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처음 마음 낸 사람은 선하지 아니한 사람과는 친히 가까이 하면 안된다.”는 경계이다. 수행이란 염불, 참선, 간경, 주력 다 좋지만 그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는 것이 참 수행이다. 그러한 정진력이란 십선업(十善業)을 잘 닦는 것이다. 그것이 몸도 고요함 이요, 마음도 고요함 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내면세계에서부터 훈훈함을 일으켜 따뜻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고 푸근함을 전해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 기운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어울림을 가질 수 있고 나를 통해서 상대가 편안함을 느끼고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이치가 바로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하신 것이요, 우리의 어버이가 자식들에게 하신 것이요, 우리가 후학들에게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히 정진하는 이는 생각을 늘 여섯 군데에 모은다.”고 하셨다. 첫째는 부처님이며, 둘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셋째는 스님이며, 넷째는 계율이며, 다섯째는 보시이며, 여섯째는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바른 생각을 갖춘 이가 얻는 삼매는 정정이다. 올바른 선정삼매는 번뇌의 결박을 끊을 수 있다. 번뇌망상을 끊으면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근심걱정이 사라지면 고통과 괴로움을 여의고, 고통과 괴로움을 여의면 늙을 일 없고, 병들 일 없고, 죽을 일이 없다. 노병사(老,病,死)를 맞이하는 것은 근심걱정, 번뇌망상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혁함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참 자유를 얻어야 한다. 이제 남은 인생은 어울어져 살아야 할 것이다. 나의 변화된 모습이 남에게 변화를 주어서 그들이 편안함을 가지게 하고, 믿음과 신뢰와 의지처가 되어 늘 오늘의 어버이가 모든 이의 어버이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보살의 실천 덕목일 것이다. 그렇게 살게 되는 정진법이 바로 몸도 고요하고, 마음도 고요한 것인데, 몸과 마음이 고요한 것은 십선업을 잘 닦아 익히는 것이고 그와 같은 삶을 살게 될 때 나로부터의 따뜻한 기운이 세상에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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