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법문을 하는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

신흥사 조실 조오현 스님 동안거 결제 법회 법문



“노망끼 있는 노승 설법보다 새소리 물소리가 낫고,

염쟁이 이야기 속에 법화경, 화엄경, 다 들어있더라,"


설산 설악이 외호하는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신흥사 설법전에 

스님들이 모여든다. 



신흥사 향성선원과 백담사 무금선원, 무문관, 기본선원 등 

4곳에서 90일간의 동안거(겨울집중 참선정진)를 마친 70여명의 선승들이다.



2월 5일 안거를 마치고, 선방을 떠나는 이들을 위한 

해제법회의 법주는 신흥사 조실 조오현(80) 스님이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방일함과 방심을 허락하지 않은 채,
 
오직 생사를 타파하겠다는 일심으로 정진해온 선승들의 해제를 

축하하듯 동장군마저 노기를 푼 화기로운 날이었다.

 

법주(진리의 수호자)로 설법에 나선 조실이 어떤 진리로 

꿈에 그리던 봄날을 열어줄 것인가. 

하지만 기대는 봄날의 얼음처럼 부서지고 만다.　



“진리는 없다. 

절마다 교회마다 방송마다 신문마다 진리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시끄로운 소음이 된 지 오래다.”



오현 스님은 

노망기 있는 노승의 설법을 듣기보다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와 

설악산의 산새소리,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오현 스님은 

동안거와 하안거(여름집중참선수행) 결제(시작)와 

해제(끝) 법회 때마다 법상에 오르긴 했지만, 

조계종 종정의 법어를 낭독한 채 내려올 뿐 자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의 일성에서 이날 법문도 길어야 5분 이내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예상과 달리 법상을 내려오지 않았다.



“달포 전에 인제에 갔는데 한 할망구가 내 손을 꼭 잡더니

‘젊을 때 서늘했던 기상과 그 곱던 눈매는 다 어디가고 

이렇게 바싹바싹 다 늙어빠졌냐’ 면서 ‘우리가 인생 사는 의미가 뭐냐'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 거냐’ 고 따져 묻더라.”



그는 "80년을 살아도 나는 모르는데, 아는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라” 고 했다. 

설법을 듣던 200여명의 대중의 답이 없자, 

“나만 모르는 줄 알았더니 다 모르니 천만다행 이로구나"고 했다. 



하지만 “코구멍 같은 무문관에 들어가 개구멍으로 넣어주는 

하루 한끼 밥을 받아먹고 3개월간 징역살이를 하고, 

둘이서 이틀 합숙하기도 어려운 세상에 40~50명이 한방에 앉아

좌선하는 이유가 돈을 얻기 위함도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진리를 알기 위함 아니냐” 며 추궁했다.
 


새끼호랑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냉혹한 어미의 추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나도 젊은 날엔 명산대찰과 천년고찰과 

명당에 진리가 있는 줄 알았다” 면서 한 염쟁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여년 전 한 신도가 남편이 죽어 염불해 달라고 청해 갔더니 

염쟁이가 주검을 마치 제 마누라나 되는양, 정성스레 염을 하고 

관을 덮길레 말을 붙여보니, 자기는 죽은 사람 모습을 보면 

그가 후덕하게 살았는지 남 못할 짓만 하고 살았는지가 다 보이고,
 
죽은이가 하고 싶은 말도 다 알수 있다고 하더라. 



죽은 사람과 말 없는 대화를 통해 

죽은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염쟁이 이야기 속에 생노병사와 제행무상(일체가 변함)의 진리 뿐 아니라,

법화경과 화엄경이 다 들어있더라.”



그는 “지금까지 2천년 간 팔만 대장경에 빠져 죽은 중생이 얼마고 

천년전, 조주와 황벽(옛 선사들) 같은 늙은이들의 넔두리에 코가 꿰인 

이 들이 얼마냐”면서 “해인사 팔만 대장경은 골동품이고,
 
문화재이지 진리가 아니다” 고 

죽은 불조사와 대장경에 동시에 철퇴를 가했다.



“대장경의 글과 말 속에 무슨 진리가 있느냐.

여러분이 오늘 산문을 나가 만나는 사람들과 

노숙자들의 가슴 아픈 삶 속에서 진리를 찾아라” 



오현 스님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7살 때인 1939년에 출가한 이래 

불교계에서도 신화적인 만행의 주인공이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해 정지용 문학상을 

탈만한 시인의 시심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한 때는 미국에서 접시를 닦으며 만행을 하고, 

바람 잘 날 없던 설악산권의 절집들을 평정해 신흥사와 

낙산사가 속초와 양양시민을 위한 사회봉사의 선두에 서면서 

참선수행 도량으로 거듭나도록 이끌었다. 



또 1997년부터 만해상을 만들어 만델라, 달라이라마 등 

세계적인 인권 평화 운동가들에게 상을 주고, 개인적으로는 남모르게 

지난해 별세한 이소선씨를 비롯한 많은 재야인사를 돕고, 

수백명의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준 숨은 실천가다.



그는 마지막으로 “절 집안에 무슨 진리가 있느냐, 

절집은 승려들의 숙소일 뿐”이라며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지 말고 함께 세상의 천국과 

극락을 만들기 위해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 세상과 함께 하라는 

뼈있는 당부였다.



옛부터 악산 중에 악산이라서 

지옥 옥(獄)자를 넣어 붙여진 설악(雪嶽)산의 지옥이 파옥되고,‘

절 집에 갇힌 진리’도 해방된 날이었다.



속초 설악산/글·사진 조현,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