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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계란 |
보살계란 범망경 보살대계 포살본 ◉ 송계서 誦戒序 모든 불자들은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들어라. 내가 이제 부처님의 대계서大戒序를 설하고자 하노라. 대중은 묵연黙然히 듣고서 스스로 죄가 있거든 마땅히 참회하라. 참회하면 안락하고 참회하지 아니하면 죄가 더욱 깊어지리라. 죄가 없는 이는 묵연하라. 묵연하므로 대중이 청정한 줄 아느니라. 모든 대덕과 우바새와 우바이들은 자세히 들어라.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후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마땅히 해탈을 보호하는 법인 바라제목차波羅提目叉를 존경하라 하시니, 이 계를 수지 하는 이는,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만남과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음과 같으며, 병든 이가 쾌차해짐을 얻음과 같으며, 갇혔던 이가 감옥을 벗어남과 같으며, 멀리 갔던 이가 집에 돌아옴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이 계는 곧 대중들의 큰 스승이라. 만약 부처님께서 세상에 더 계실지라도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기 어렵고 선한 마음도 내기가 어려운지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되, “작은 죄를 가벼이 여겨 재앙이 없다 하지 말라. 물방울이 비록 적으나 점점 큰 그릇에 찬다”하시니, 찰나 동안에 지은 죄로 무간 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짐이라.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겁을 지나도 다시 받기 어렵느니라. 젊은 시절은 머무르지 아니함이 마치 달리는 말과 같고, 사람의 목숨은 무상함이 폭포수보다 빠르니라. 오늘은 비록 살아 있으나 내일을 또한 보증하기 어렵느니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부지런히 정진하고, 삼가 게으른 생각에 잠겨 방일放逸하지 말 것이니, 밤이라도 마음을 수섭하여 생각을 삼보三寶에 두어 헛되이 지내지 말지어다. 한갓 게으름만 피우면 다음에 깊이 후회하게 되리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삼가 이 계를 의지하여 여법하게 수행할지니라. -------------------------------------------------------------------- 여래사에서는 포살법회를 했다고 합니다. 포살법회는 부처님께서 초하루, 보름날 대전제는보살계를 받은 불자를 대상으로 해서 대덕과 우바이, 우바새 사부대중을 대상으로 해서 부처님 당시 때부터 십중대계(十衆大戒)와 보살사십팔계(菩薩四十八戒)를 해왔던 의식으로 부처님의 계법이 전승되기 위해서도 여러분께 서도 불자가 되기발원한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아니하며 삼귀오계를 받아 수지하는 보살계(菩薩戒)를 전부받고 초하루, 보름에 포살법회에 참석하는 것이 불자로서 확인하고 다짐하고 인식하는 가르침이니까 아주 좋은 덕목이 들어 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래사만 아닌 구룡사를 비롯 각 포교당에서도 전승 해서 포살법회를 했으면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칠월백중만 했는데 북방불교는 추운겨울철도 있어 칠월백중과 정월보름에 결제대중 들이 모였다. 부처님이 계시던 인도에는 여름철이 우기 여서 덥기도 하고 비가온다. 그럴때 대중들이 정사에 부처님을 모시고 큰스님들을 모시고 결제에 들어서 수행정진 하는데 초하루,보름에는 포살법회를 하고 칠월백중에는 자자(自恣)라고 해서 3개월 동안 함께 모여서 살면서 아쉽고,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들도 들어내고 또 상대의허물도 지적하고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스스로 들어내서참회하는 의식이 자자의식이다.
오늘 여러불자들에게 들려줄 말씀은 우리들의 일상적인생활 속에서 충분히 들여다 볼수 있고 이해되고 납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말씀을 바탕으로 전해드리고 한다.
‘상처’라는 전호성님의 시 비 오는 날에는 빗방울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눈 오는 날에는 눈송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눈,비 그치면 햇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한번 살아온 세월 속에서 있었던일들을 떠올려 보셨으면 한다. 나에게 상처가 있다면 상대에게도 상처는 있을 거라는 것이다.
어떤 거사님의 아내가 큰수술을 받고 일년이상 얼마나 힘들어 하는 모습과 살아온 50년 세월을 회고 하면서 말씀 하시는데, 가슴이 찡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세상을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되돌아 보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남은시간을 잘 갈무리질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전해주고 싶다.
달라이라마의 어머니께서 손녀에게 당신의 살아온 80~90년 생애를 떠올려 보는 것
“내가 지금 실제로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정말 낯설고꿈만 같구나 까마득한 생각이구나 가끔씩 내 기억이 희미 해지는 것 니가 이해 하거라 솔직이 말해서 나는 내 생일을 모른다. 하기사 날짜가 무슨 소용이 있게는 가만 우리는 요란한 축하소리도 듣지 못하고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면서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다음 이렇게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구나, 그런 과정이 어쩌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것이 우리들의 일생을 되돌아 보면 그게 여자의 일생이 아니겠니,” 그러나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복된 세상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대목이다.
행복의 열쇠라는 책에서 보니까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서 소중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 사람 사람은 누구나 다 고귀한 존재이다.”
요즘 23명에 우리백성들이 아프칸이스탄에 가서 아주 어려운 환경에 내 몰려있다. 그 중 한 성직자는 죽임을 당했다. 그 쪽에서는 그들을 이교도이다, 기독교인이다, 우리들에게 도움을 줄려고 온 것이 아닌 개종할 사람들 에게 복음을 전파 하기 위해서 왔을 뿐이다. 라고 규정 지웠다. 각종교는 신을 믿는다. 그러나 신이라는 말을 바꾸면 마음 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신이라고 하는 말을 바꾸면 영혼이니, 혼이니, 넋이니, 혼백이니, 아니면 귀의처니 중심에 의미를 지니고도 있다. 화엄경에 보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작은모공의 삼천대천 세계가 다 들어 올 수 있고 털어 끝에 세상이 메어있는 그 이치를 비춰 본다면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인간성 회복을 늘 자양분으로 삼아 주셨고 부처님께서 가르침대로 우리들이 살기만 한다면 우리도 부처님과 다름없는 보살도를 실천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진솔한 의미에 향기로움을 지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전한다. 우리 불교는 죽임을 당했을지 언정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 생사를 내건 도박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불교라는 종교는 종교전쟁을 지금까지 일으킨 적이 없고 휘말린 적이 없는 것을 비춰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모습일까를 들여다보게 하는 가르침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는 지금까지 수없는 생애를 살아왔고 앞으로도 수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된다. 금생을 마감 지어지는 그런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인생을 살고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시간적으로야 그시간에 높낮이가 있겠지만 공간적으로야 무슨 높낮이가 있겠습니까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있고 고통과 괴로움을 싫어한다. 여러분은 기쁜 것이 좋나 슬픈 것이 좋은가, 즐거운게 좋나,괴로운게 좋은가 그러나 싫어하는 마음이 중생심이다. 우리가 육바라밀중에서 인욕에 대해 공부할 때 말해죠, 슬프고 괴로움만 참는 것이 아니고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 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기쁘고 즐거워 하는 것을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 일까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 일까요 우리는 가난한 시절을 돌아봐도 우리들은 거부장자이다. 돈을 예로보면 100만원이 60년대 초 집 한채값 이었지만 그 후로 원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 돈이나 지금 돈이나 돈도 상품이기 때문에 가치가 달라졌을 뿐 돈은 돈이다. 그래서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는 거부장자 이다. 그런 돈을 아무 스스럼 없이 株고 받을 수 있는 우리는 지금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게 진정한 행복 일까, 그것이 풍요롭게 물질적으로는 만들어 줄지언정 정신이나 마음 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웠는가, 우리 속담에 “천석지기 천가지 걱정 만석지기 만가지 걱정” 이라고 했다. 여기 계신 불자들은 지금 얼마만큼의 근심이 있나요 얼마만큼의 괴로움을 지니고 살고 계십니까, 궁극적인 최상의 행복은 부처님께서는 깨달음 이라고 하셨다 그 깨달음 이라는 것이 대관절 어떤 것 입니까 우리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것 아닐지 말하지 않는다고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행복한 것은 일시적으로 행복이 될지 모르지만, 최고로 행복한 사람은 자기근본을 잃어 버리지 않고 주워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자기도리 하면서 살려고 노력 하시는 분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8월 한 달은 바쁜 일정으로 여러분들을 볼 수 없지만 한 달에 한번씩 이라도 깊은 인연을 맺은 여러분들 하고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삶이 결국은 행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하는 말씀 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먹는 것 잘 잃어버리고 잠자는 것 다 잃어 버리고 먹고 자는 것 놓아 버리면 인생살이 한가해진다. 여러분들 세끼 식사를 한끼니 만 덜먹으면 한번 모아 보십시오 일년에 얼마만큼 되는지 일생동안 얼마나 되는지 한번 접근 해 보십시오, 최소한에 양식으로 최대한의 삶을 노력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마 그것을 표현 해보면 사람답게 살면서 사람노릇 하면서 살자는 것인데 내가 해야 할 일리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알면 그 사람 인생을 무장무애(無障無礙) 할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은 살아 있다는 것 살아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할일이 있다는 것 할일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얼마든지 우리는 찾을 수 있다는 것 이다. 불교대학에서 드린 말씀 중에 ‘그래도’ 라고 하는 글이 있다. “당신이 착한 일을 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고 의심할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착한 일을 말이 아니라 행동 입니다 마음을 주고 손길을 보내고 발길을 내딥는 것 입니다. 착한 일하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 입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해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된다는 것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캔트 케이스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주어도 준다는 생각 없이 주웠다는 생각 없이 받을 거라는 생각 없이 나눕시다. 이런 부처님 말씀과 무엇이 다릅니까, 상응구경에 보면 “아이들은 어른의 안식처다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친한 벗이다” 이것이 가족이다.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나자 스스럼 없이 가자 가면 아주가나 우리는 아주 갈수도 없고 아주 가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냥 만났는가 우리 인연이 보통인연인가 또 만난다는 그런 확신과 믿음으로 기도 해서 집을 한번 지어보자 허공의 누각을 짓지 말고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우리 인생을 설계하고 집을 지어 나가자는 것이다.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은 우리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시달리는 것은 그 욕심 때문이요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런데 보면 왜 화를 잘 내고, 왜 짜증을 잘 내고, 왜 신경질을 잘 내고, 왜 열을 잘 받는가 욕심과 어리석음의 부산물이다. 욕심만큼 어리석은 만큼 짜증 내게 되어있고 화 내게 되어있고 신경질 내게 되어있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보니까 부산의 한 지하도에서 한 스님과 기독교인의 사건을 보면 그 스님은 전혀 흔들림 없이 미동 없이 표정이 화 내거나 신경질 내거나 하지 않고 있는 스님이 있는가 하면, 또 거리에는 스님 아닐지 모르는 스님의 형상을 하고 있는 자 들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주는 자와 받는 자와 물건 삼륜이 청정한 것이 시참보시다 라고 하였다. 열반경에 보면 부처님은 죽은 소에도 우황이 있지 아니한가, 말씀 하셨다. 그들이 파계를 했고 그들이 삼아왜도고 인간세상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마구니라 할지라도 죽은 소에 약재가 들어 있듣시 누군가를 통해서 스승의 날을 기억하게 한다든지 어버이 날을 기억하게 한다든지 누군가가 당신 아내를 살펴주는 말을 들으면서 내 아내를 생각하고 내 남편을 생각하고 내 자식을 생각 할 수만 있다면 죽은 소의 우황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든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초월하게 된다고 하는데 얽매임으로부터 헛된 삶을 이끄는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 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이런 것을 살피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나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 지지 않겠는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나면 더 이상 무거운 것이 없는 것처럼 집착을 여의고 애써서 노력하면 차안의 세상에서 피안의 세상에 다다른 사람은 목숨을 다한 것에 도리어 만족해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아까울 것이 없다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힘들 것이 없다. 그러나 불보살은 결코 누구에게나 그 무엇을 요구 한적이 없다. 그저 살아가야 할 바른 길을 보여 주셨고 그렇게 살아가고 계셨던 분들이 선지식이고 불보살님 이었다. 그런 세상에 가장 아름다움을 우리가 내면에 간직하고 살수 있는 그 가르침이 보살대계 서문에 나오는 말씀처럼 우리가 묵연한 마음으로 살아 가도록 노력하고 우리가 인연맺은 소중한 인연들을 위해서 우리들은 함께 어울림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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