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예절 <1> - 절도량을 들어갔을 때
    이 름 : 운영자 등록일 : 200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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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량을 들어갔을 때

1. 일주문이 보이면

일주문이 뭐냐고 물으실 벗님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글자로 본다면 一柱門이다. 즉 기둥이 하나만 있는 문이라고 하는 의미가 되겠는데, 대개 산중의 큰 절을 들어가면 멀리 입구에 해당하는 부근에서 기둥만 두 개 서있고, 그 위에 지붕은 근사하게 되어 있으면서 `靈鷲山通度寺` 라던지 `伽倻山 海印寺` 라고 적인 편액이 반겨주게 된다. 즉 여기서부터 절의 경내가 된다는 의미겠다. 그러면 찾아가는 불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경건하게 갖고 잠시 자신의 주변을 둘려 보는 것이 좋겠다.

이미 소지품이나 의상 등은 그대로 해 가지고 왔으므로 설령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고 보면 된다. 절을 찾는 경우에 대개는 주로 관광을 겸해서 가기 때문에 절에만 가는 것이 목적이 되지 않다 보니까, 의상 등이 절의 분위기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도 그러려니... 한다. 다만 예전에 남해 보리암에서 기도를 하는데, 아가씨들이 상주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다가는 비키니 차림으로 보리암까지 올라왔던 적도 있었다. 물론 깔꺼러운(?) 스님의 눈에 띄이면 눈물이 퍽 쏟아지게 야단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스스로의 양식 문제라고 보고 싶다. 왜냐면 인도에서는 완전누드로 수행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한국의 절에 왔는데, 야단을 친다면 오히려 너무 껍질에 마음을 쓴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

낭월이의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좋다고 본다. 보기도 좋고 나쁠 것이 없다고 보겠다. 중요한 것은 껍질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절에 들려서 절을 한다면 그것도 또한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역시 크게 나무랄 일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싶다. 다만 절에서 연인들이 키스를 한다던지 절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이 있다면 이것은 마음이 잘못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야단을 맞을 가능성이 많겠다.

2. 사천왕문 앞에서

사천왕은 일주문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절 도량에 들어서는 위치에 버티고 계신다. 눈알을 부라리면서 네 분의 호법 신장들이 각기 고유의 무기를 손에 들고, 방문객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는 장면은 그럴싸하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엄숙한 부처님의 도량이라는 이미지가 강력하게 풍겨 나온다. 예전에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면 절로 데리고 와서 사천왕을 만나게 했다고 들었다. 그러면 놀라서 임신부가 유산을 하게 된다는 말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큰 효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방문자가 사천왕을 보는 순간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서 자기도 모르게 절을 했다면 구태여 말릴 생각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절까지 할 필요는 없다. 반 절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대웅전을 향해서 합장 배례 정도라면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하겠다. 시골의 할머니들은 이 곳을 통과하면서 그냥 지나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부지런히 각각 천왕 님들에게 고두백배를 하고 통과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뻣뻣하게 가는 것도 과히 아름답지는 않다.

참고로 사천왕의 의미를 설명해 드린다면 이렇다. 東方을 지키는 天王은 지국천왕이고, 남방을 지키는 천왕은 증장천왕이며, 서방을 지키는 천왕은 광목천왕, 그리고 북방을 지키는 천왕은 비사문천왕이다. 그리고 이 팀에서 가장 큰 형님은 비사문천왕이라고 하며 비사문 천왕의 손에는 대개 불탑이 들려있다. 이것을 오행의 배치에 대입시켜서 어떤 절이 사천왕은 피부 색깔로써 구분하기도 하는데,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동방은 청색이고, 남방은 붉은 색이며, 서방은 흰색, 북방은 검은색이 된다. 이러한 색깔을 알고서 잘 관찰해보면 과연 그런 의미를 부여한 곳이 상당히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냥 대충 사천왕이구나.. 하고 지나쳐도 상관은 없다.

3. 대웅전 앞에서

실은 불자 들만 절에 가는 것은 아니다. 비불자도 절에는 갈 수가 있다. 겉으로 봐서 확연하게 표가 나는 수녀 님들이 절도량을 찾는 것도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하겠는데, 그런 경우에 대웅전에 가서 절을 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불교와 상관이 없더라도, 일단 대웅전 앞에서 내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구경을 하는 차원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합장(合掌)이다. 낭월이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두손모음` 이라는 말을 끝에 붙인다. 이것은 합장의 우리말 식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가능하면 많이 사용하자는 의미도 들어있다. 여하튼 이제 합장이라고 하는 것을 해보는 것도 교양이 있어 보이는 장면에 다다르게 되었다. 대웅전 앞에서는 일단 기가 질리게 된다. 너무나 웅장한 건물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대웅전 앞으로 계단이 있을 경우라고 하더라도 예의를 갖추려고 한다면 대웅전의 측면으로 나있는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예의 바른 사람이다.

말인 즉, 정문에는 신장님들이 호법을 하고 있는데, 괜히 잘못 통과 하다가는 한 대 얻어 터질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앞으로 들어가는 것이 서양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식의 정서에서는 과히 멋져 보이지는 않는 장면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하튼 대웅전 뜰에 올라섰다면 일단 정면의 열린 문(혹은 닫혀 있을 수도 있다.) 앞에서 공경스럽게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도 방문자의 예의는 충분히 한 셈이 된다. 그리고 불자이면서 시간이 급해서 안으로 들어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경우에는 세 번 머리를 조이라면 된다. 그 의미는 삼보께 절을 세 번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불교의 법에 의해서이다. 그렇게 하고서 나머지 전각들을 둘러보면 된다. 절의 규모에 따라서 각각이겠지만, 적게는 서너 군데에서 많게는 10여 군대가 넘는 곳도 있다.

그리고 문화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경우라고 한다면 보물이 어디 있는지 국보는 어디 있는지를 살펴서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둘러보다가 스님이라도 만난다면 불자의 경우에는 합장하고 머리 한번 숙이면 충분하고 불교도가 아닐 경우에는 간단히 머리를 까딱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교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마치 십년 전의 웬수를 만난 듯이, 노려보는 것도 아쉽고, 또 불쌍한 고아나 거렁뱅이를 보는 기분으로 측은하게 보는 것도 과히 좋은 풍경은 아니다. 그러다가는 자칫 성질 더러븐(?) 스님에게 부딧치기라고 하면 아마도 된통으로 구박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길가다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목례 정도는 하는 것이 보기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정도의 상식이라면 어느 절이던지 찾아가서 둘러보고 놀다가 하산을 해도 허물이 없을 것으로 본다. 혹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께름찍한 부분이 있었다면 차제에 잘 알아 두시면 두고두고 편안하실 것이다. 기본적인 예의는 이 정도로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