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란 무엇인가 - 3. 모르고 사는 인생
    이 름 : 운영자 등록일 : 200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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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사는 인생

출처 : 조계종 포교원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인생을 궁금해 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다 일생을 마친다. 한 평생을 살면서 목숨 걸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의 삶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태어난다는 일만 생각해도 얼마나 고생스럽고 힘든 일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사느니, 못사느니 한다. 그리고 큰 병고에 시달리든가 평생을 함께 의지하던 이의 이별과 죽음에 부딪쳤을 때 오는 고통과 마음의 아픔은 눈물로도 감당할 수 없다. 돌아보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즐거움보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나날이다. 환희의 시간은 기억에 없고 오늘도 정해진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이 길을 왜 가야하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끝도 모를 인생을 그저 안개낀 다리를 건너는 사람과 같이 어림 짐작으로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인생을 다 알고 있는듯이 웃고 즐기며 산다. 이렇게 인생을 모르면서도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인생역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모르면서 사는 것이라고.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 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이다. 즉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사람은 계속 그 행위를 한다. 하지만 죄즐 저지르면 벌을 받고 그것이 나와 남에게 아픔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고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조용한 광야를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와
ㅆ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우물이 있어 급한 나머지 그 속으로 들어갔다. 우물에는 마침 등나무넝쿨이 있어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 내려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밑에는 다시 무서운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위를 쳐다보니 코끼리가 아직도 우물 밖에서 성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에만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고 잇는데 어디선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위에서 흰쥐와 검은쥐가 번갈아 가며 등나무 넝쿨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작은 뱀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온 몸에 땀이 날 정도로 두려움에 떨며 칡넝쿨을 잡고 위만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나타나 등나무 넝쿨에 집을 지었다. 그러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데 그는 꿀맛에 취해 왜 꿀을 더 많이 떨어뜨려 주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잊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등나무 넝쿨은 생명,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의미한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하며, 벌 다섯 마리는 인간의 오욕락(五欲樂)을 말한다. 오욕이란 재물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애욕, 먹을 것에 대한 탐욕, 명예에 대한 욕망, 편안암의 추구를 말한다. 이와같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채 탐욕의 꿀맛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이다.

혹자는 욕망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인생에서 욕망으로 인해 성취하는 것보다 욕망 때문에 잃은 것이 더 많다.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욕심은 지혜를 흐리게 한다. 이러한 장애를 없애고 참된 지혜를 발현토록 해야 한다.